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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테러의 여파, 캘리포니아의 시리아 난민 가족에 도달하다.

가셈 알 하마드와 아들 모하마드가 캘리포니아 주 털록 시에 위치한 새 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알 하마드 가족은 시리아 내전을 피해 망명하여 3년 간의 여정을 거쳐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도착했다. 출처: 모니카 캠벨 (PRI의 승인 하에 사용)

가셈 알 하마드와 아들 모하마드가 캘리포니아 주 털록 시에 있는 새집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알 하마드 가족은 시리아 내전을 피해 망명하여 3년간의 여정을 거쳐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도착했다. 출처: 모니카 캠벨 (PRI의 승인 하에 사용)

본 기사는 모니카 캠벨PRI의 더 월드를 위해 작성한 것으로 원문 기사는 2015년 11월 30일 PRI.org에 실렸으며, 콘텐츠 공유 협약의 목적으로 이곳에 다시 게재합니다.

기자가 알 하마드 가족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아이들 아버지인 가셈 알 하마드는 막 운전면허 시험을 보려던 참이었다. 이후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가 이들 가족의 아파트 단지 앞에 차를 세웠을 때 알 하마드 역시 자신의 미니밴을 몰고 와 단지 앞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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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시험은 쉬웠나요?

“네, 쉬웠어요!” 알 하마드가 웃으며 말한다 (그는 아직도 아랍어로 말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비롯해 실기 시험도 통역을 대동하여 아랍어로 치렀다. 하지만 도로 표지판들 정도는 모두 영어로 읽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운전면허 취득은 하나의 성취이자 미국에서 새 삶을 살기 위한 작은 첫발이었다. 알 하마드와 아내 와제드 알 칼리파는 자녀들과 함께 시리아 내전을 피해 망명한 이후 2월에서야 이곳에 도착했다. 폭격을 맞은 홈스 시의 고향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으로 2시간 떨어진 캘리포니아의 전원도시 털록 시의 땅을 밟기까지는 근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들은 털록에 지사를 둔 국제 구조 위원회(IRC)의 도움으로 털록 시에 새로 정착하게 되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이제 이들의 삶은 앞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두 살배기 모하마드는 영어로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모하마드의 누나 3명은 학교에 다니며 빠른 속도로 배우고 있다. 현재 4학년인 장녀 아르와(8세)는 얼마 전 시험에 합격한 것에 대해서 자랑했다. “곱셈 시험을 봤는데요, 정말 쉬웠어요!”

(왼쪽에서부터) 아르와와 마르와, 라완이 최근 숙제를 하는 모습. 이들 자매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후 2월에 캘리포니아 주 털록 시에 도착했다. 출처: 모니카 캠벨 (PRI의 승인 하에 사용)

(왼쪽에서부터) 아르와와 마르와, 라완이 최근 숙제를 하는 모습. 이들 자매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후 2월에 캘리포니아 주 털록 시에 도착했다. 출처: 모니카 캠벨 (PRI의 승인 하에 사용)

알 하마드 부부 역시 매일 아침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진도는 느리지만, 이들에게 영어 습득은 35세의 알 하마드가 영어 공부에 몰두하느라 미국 정착 초기에 취직했던 할랄(역주: 이슬람 계율에 따라 도축되는 고기) 도살장을 그만둘 정도로 최우선적인 과제다. 현재 수입이 없는 알 하마드 가족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식권 및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제공되는 기타 복지 지원을 받고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 묻자 알 하마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전 농장을 갖고 싶어요. 농장을 갖는 게 꿈이에요.” 소, 염소, 닭이 있는 농장. 시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편, 이곳에서 알 하마드 가족의 교우 관계는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 알 하마드 부부는 새로운 친구들 대부분을 지역의 이슬람교 사원에서 만났다. 그중 한 명은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인 키파 아지즈로, 본인의 말에 따르면 알 칼리파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고 한다. 최근 아지즈는 알 칼리파가 가족과 처음으로 맞게 된 추수감사절 식사 준비를 위해 쇼핑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제가 이 친구한테 요리법도 전수해줄 거에요”라고 아지즈가 말한다. 아지즈는 또한 어린 모하마드도 돌봐주고 있다.

캘리포니아 새 보금자리의 아이들 방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다. 아르와(8세)는 "자신이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 시리아 깃발을 그렸다고 한다. 출처: 모니카 캠벨 (PRI의 승인 하에 사용)

캘리포니아 새 보금자리의 아이들 방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다. 아르와(8세)는 “자신이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 시리아 깃발을 그렸다고 한다. 출처: 모니카 캠벨 (PRI의 승인 하에 사용)

한편, 알 하마드 부부는 또한 미국과 미국 정치의 냉혹한 현실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다. 미국 주지사 중 절반 이상이 난민들이 제대로 심사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를 근거로 프랑스 테러 공격 이후 이라크 및 시리아 난민 수용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부부는 현재의 이런 상황 때문에 미국에 오고 싶어 하는 형제와 조카를 비롯한 친인척들의 미국행이 지연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힘들 거에요”라고 알 칼리파가 말한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친정 식구들에게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참사 때문에 미국으로 오는 데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고 있다.

부부는 또한 보안 및 난민들에 대한 현재의 심문 절차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요르단에서 알 하마드 가족이 난민 신청을 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면담과 신원 조사를 거쳐야 했다.

알 하마드가 말한다. “일 년 반 동안 끊임없이 질문을 받았어요. 몸에 문신이 있느냐, 상처가 있느냐,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나,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나, 군 복무를 했나, 언제 복무했나, 어디서 복무했나 등등.” 한 번은 요르단에서 미국 당국 직원과 개인 면담을 했는데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면담이 이어졌다고 했다. “중간 중간에 한참 쉬고는 다시 질문들이 이어졌죠.”

파리 테러 공격 이후 가족은 뭔가가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다. 히잡을 쓰는 알 칼리파는 예전에는 안 그랬던 사람들이 파리 사건 이후로는 히잡을 쓴 자신을 쳐다본다고 말한다. “파리에서 테러 공격이 있고 나서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지금 이 시기가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어요”라고 알 하마드가 말한다. “곧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시리아와 전 세계에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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