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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인정받지 못한 나라인가?

2019년 5월에천안문 학살의 30주년을 기념하며 팽창식 탱크가 대만의 중정기념당 자유광장에 놓인 모습.필립 노우벨이 찍고 사진 사용의 허가를 받음.

대만의 법적 지위는 국제관계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이슈 중에 하나이다.대만 내에서, 2300만 명의 인구 중 무리의 사람들이 완벽한 독립을 주장하는 반면, 대부분은 그들의 땅이 중화민국(ROC)에 속한 주권적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의 입장은 현재 정치적 행정적으로 통제하지는 않으나, 대만은 중국 인민공화국(PRC)의 일부이자 한 주라는 것이다. 베이징은 대만을 어떠한 주권적 혹은 독립적 상태로 묘사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중국 본토 시민들은 대만을 향한 다양한 시각들을 가지고 있으나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정부의 시각 쪽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 이슈는 대만에서 있을 2020년 1월 대통령선거 캠페인에서도 이어져 크게 논쟁이 됐다.

언제부터 분열이 일어났을까?

두 체제 ROC와 PRC의 시작은 하나였으나 두 개의 다른 정당으로 분열되자 나중에는 내전으로까지 이어져 결국 각각 다른 영토를 지배하게 된 일이다.

첫 번째 정당은 1911년에 설립된 중국의 마지막 청나라의 몰락 후 중국이 공화국이 되면서 생긴 중국 국민당이다. 그들의 사상은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를 뜻하는 삼민주의를 바탕으로 두었다. 초기 중국 공산당(CCP) 또한 이 사상을 바탕으로 두었고 두 정당은 처음에 소련에게 지지를 받았다.

두 번째 정당은 1921년에 설립된 중국 공산당(CCP)이다. 이들은 공산주의로 처음에는 소련을 모델로 삶았으나 점점 그들의 버전으로 발전시켰다. 1927년까지 CCP는 전반적으로 KMT와 유사했고 지지를 하기도 했다.

이후로는 몇 년간 두 정당 모두 추구하는 사상 차이로 분열되었다가 1931년에 일본의 만주 침공을 맞서기 위해 재결합하였다. 제2차 국공 합작으로 알려진 이 시기는 경쟁적인 야망이 마지막 분열을 일으켜 1940년 초반까지만 지속되었다.

두 정당 모두 1946년에 시작된 내전에 참가하였는데 CCP가 중국 본토의 지배권을 얻고 KMT가 2만 명의 군사와 피난 자와 대만 땅으로 가면서 1949년에 종전했다. 1949년부터는 두 정단이 자신들의 중국의 단독 법적 대표라고 주장을 했다.

대만에서 중화민국

세계가 냉전에 참전하고 나라와 대륙이 지지 받는 정부가 모스크바 혹은 워싱턴과 서양으로 나뉘면서 대만의 입지가 아주 중요하게 됐다. 베트남전쟁을 잇따른 한국전쟁이 대만을 전략적으로 만들고, 군과 정치적 기반을 아시아 중에서 미국에 두었다. 그러므로 워싱턴은 외교적으로 중국 인민공화국을 인정 안 하면서 대만에 경제적 도움을 주고, 중화민국에게 정치적, 군사적 도움을 주기로 서약했다. 이것은 KMT가 대만 사회에서 절대적인 통치와 현대경제에서 발전을 하는데 큰 기여가 됐다.

대만에서 ROC 지지자가 차를 ROC 깃발로 꾸민 모습. 필립 노우벨이 찍고 사진 사용의 허가를 받음.

세계가 냉전에 참전하고 나라와 대륙이 지지 받는 정부가 모스크바 혹은 워싱턴과 서양으로 나뉘면서 대만의 입지가 아주 중요하게 됐다. 베트남전쟁을 잇따른 한국전쟁이 대만을 전략적으로 만들고, 군과 정치적 기반을 아시아 중에서 미국에 두었다. 그러므로 워싱턴은 외교적으로 중국 인민공화국을 인정 안 하면서 대만에 경제적 도움을 주고, 중화민국에게 정치적, 군사적 도움을 주기로 서약했다. 이것은 KMT가 대만 사회에서 절대적인 통치와 현대경제에서 발전을 하는데 큰 기여가 됐다.

대만에서 베이징으로 바꾸다

중국의 존재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서양에서 영원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1960년부터 서양 나라들이 대만과 외교적 관계를 끊기로 결정을 내리고 중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외교적 관계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제정해서 유지하기 때문에 베이징으로 바꾸었다. 미국은 PRC와 1979년 1월 1일에 외교적 관계를 확립하였다.

하지만, 약 50개국이 대만에서 거의 모든 대사관과 영사관 활동을 하는 대표 사무실을 유지하였다. 2019년 말에는 15개국만이 대만과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적 단체는 가끔 ‘‘차이니스 타이베이‘라고 대만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 표어는 대부분 올림픽에서 쓰이나 세계 무역 기구 같은 단체에서도 쓰인다.

대만민국? 

국제적 단체는 분리되어 있는 대만과 중국의 상태 유지에 만족을 하나 양쪽 나라에서는 어떤 정치적 세력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단어 ‘중화민국'을 없애고 대만 혹은 대만민국으로 교체하자고 주장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두 정당 희락도 연맹타이완 단결연맹은 특히 이 이슈에 관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운동은 1895-1945년의 대만 일치 시기으로부터 유래됐는데 1990년대부터 문화적 언어적 권리를 주장하는 여러 정당과 시민운동을 일으켰다.

이 정치적 시각을 제일 대항하는 단체는 KMT로 그들은 중화민국의 정체성을 포옹 하면서 장기적으로 대만과 중국의 통일을 믿는다.

DPP는 범로 연맹의 일부로 대만의 주권적 상태를 지지하면서 PRC와의 통일은 추구하지 않는 더 애매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만이 제한적으로 대만 땅 ROC만을 뜻하던 입장이 대만민국으로 선포되던 이 상황은 몇 번이나 선거 달력과 DPP 리더와 상위 공무원의 개인적 견해의 따라 다름을 분명히 한 이슈이다.

베이징의 ‘일국양제’ 

베이징에서는 대만이 독립적이라는 어떠한 의견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베이징은 지속적으로 CCP에 의한 통일은 미래를 위한 공식적인 정책과 전략이고 군사적 세력을 지배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일국양제‘가 통일의 뼈대가 되는 것을 믿고, 현재는 홍콩과 마카오에 적용하였다.

반면에 베이징은 대만의 외교 봉쇄와 다른 부분에 관한 정책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대만으로 인정되고 있는 몇 개국을 설득해서 대만과 단절하고 중국으로 바꾸는 것에 성공적으로 실행됐다. 또한 그들의 경제적 활동에 시각을 강요하고, 외국의 영공과 온라인 소매상을 밀어내고, 문화적 교육적 배우들에게 서비스나 이벤트를 광고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반기, 제재, 중국 시장에 접근 하는걸 막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만, 중국'이란 표어를 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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