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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된 여성 혁명가 4인

Categories: 동 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시리아, 시민 미디어, 여성/ 젠더, 인권, 전쟁/ 분쟁, The Bridge

시리아 민주화 항쟁 중 실종 및 사망한 4명의 여성 혁명가.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파드와 술레이만, 라잔 제이툰, 라마 알바샤, 메이 스카프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민주화 운동은 지금까지 약 50만 명 이 넘는 희생자를 낳았고, 7년 넘게 지속되는 길고 지루한 싸움에 언론의 관심은 점점 더 시들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리아인들이 혁명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4명의 여성 혁명가들이 있다. 

파드와 술레이만 (Fadwa Suleiman)

파드와 술레이만. 사진제공 및 허가: 라미 자라(Rami Jarrah)

파드와 술레이만 [1]은 시리아 알레포 (The city of Aleppo, 시리아 북부에 위치) 출신의 배우로 시리아인들 대부분이 알아보는 유명인이었으며, 2011년 홈스 (The city of Homs, 시리아 중부에 위치) 에서 시위 [2]가 일어나면서 혁명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짧은 머리에 카피예 [3] (팔레스타인에서 머리에 쓰는 터번) 를 쓴 채 시위자들에 둘러싸인 파드와는 불과 몇 달 전 매력 넘치고 화려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강렬한 분위기를 뿜어냈었다. 한 때 시리아의 전 연령층을 매료시킨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는 홈스 시민들이 지독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시민 불복종 시위에 대한 결의를 다지도록 설득하는 격정적인 목소리로 탈바꿈 되어 있었다.

파드와가 바샤르 알 아사드 (Bashar Al-Assad) 대통령과 같은 종파인 알파위 [4]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존재 자체가 시위의 정당성을 부정하려는 정부의 공식 성명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근거가 되었고,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암살 또는 검거하려는 당국을 피해 프랑스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다.

메이 스카프 (May Scaff)

메이 스카프. 사진출처: 메이 스카프 페이스북 계정

메이 스카프도 유명 배우였다. 필자는 남자 친구와 자주 가던 다마스쿠스 (Damascus, 시리아의 수도) 에 있는 한 술집 (Baal’s Cave) 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남자 친구의 얼빠진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메이 스카프잖아,” 라는 남자 친구의 말에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춤추고 있던 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필자는 질투의 눈빛을 보내야만 했었다. 필자는 2013년 요르단 암만 (Amman, 요르단의 수도) 에서 열린 시리아 인권 운동가들의 모임에서 마침내 그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호탕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당시 정의로운 나라를 꿈꾸던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면서 시리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가장 최근에 찍힌 사진 속 메이는 한 때 여유 넘치고 아름답던 자태는 온데 간데 없고 얼굴은 경직돼 있고 머리카락은 거의 백발이 된 모습으로, 시위를 적극 이끌었던 지난 7년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Razan Zeitouneh

라잔 자이툰. 허가 후 사진 개제

라잔 자이툰은 미래의 법무장관으로 시리아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이름이다. 그만큼 시리아인들이 그들의 운명을 맡기고 기댈 수 있는 존재이자 ‘정의의 상징’ 인 것이다. 인권 변호사로서 정치범 변호에 힘썼으며 시리아 인권협회 [5]지역합작위원회 [6] (해당 지역의 시위와 관련된 내용 및 정보를 보도) 를 설립했다. 이러한 그녀의 반정부 활동은 시리아 민중봉기를 진압하고자 한 아사드 정권과 극단주의 세력의 표적이 되었다.

라마 알바샤 (Lama Albasha)

대학생인 라마 알바샤. 사진출처: 라마 지인들의 트위터 계정

라마의 친구들이 소셜 미디어에 공개한 사진에는 흰색 브라우스와 흰 바지를 맞춰입고 그 위에는 젊은층 사이에 유행하는 분홍색 치마를 겹쳐 입은 한 소녀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눈에 띄는 물방울 무늬 운동화와 함께 머리띠처럼 히잡 (이슬람 여자들이 외출 때 머리에 쓰는 수건) 위에 걸쳐 있는 선글라스는 시리아 여성들의 최신 패션트렌드를 보여주는 듯 하다. 또 다른 사진 속에 그녀는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고 카피예를 목에 두른 채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다.

1992년 생인 라마 알바샤는 다마스쿠스 대학교 (University of Damascus) 에 다니는 학생이었으며, 2011년 초기 항쟁 이후 설립된 지역위원회 중 그녀가 소속된 단체가 있는 탈 (The city of Tal, 시리아 북부에 위치) 에서 2014년 11월에 체포돼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성의 영어개인교습 요청에 응했으나 이는 함정이었고 결국 체포돼 안보부로 넘겨졌다.

4인의 여성 혁명가 중 3명 사망, 1명 실종

파드와 술레이만 (Fadwa Suleiman)은 오랜 투병 끝에 2017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그녀는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시리아 정부가 모든 걸 없앤다 하더라도, 우리의 꿈만큼은 지켜내야 합니다. 설사 단 한 명만이 남더라도, 그 사람이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시리아는 지금 정상적인 국가가 아닙니다. 지리적 실체가 없는, 그저 개념에 불과한 나라입니다. 이것이 제가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이 고귀한 혁명을 이어나가는 이유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며 시리아 혁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었다.

대학생 라마 알바샤 (Lama Albasha)는 악명 높은 군사 교도소에서 고문과 처형으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사망자 명단’에 오른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인간 도살장’ [7] 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사이드나야 (Saydnaya) 감옥과 같은 시리아의 많은 군사 교도소에서는 비인간적인 고문과 처우가 계속되고 있다. 라마의 가족은 2018년 7월 31일에 딸의 신원조회를 통해 그녀가 수년 전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라잔 제이툰 (Razan Zeitouneh) 변호사는 2013년 12월에 실종됐다. 그녀는 수도 다마스쿠스의 외곽에 위치한 두마 (Douma) 에서 복면을 쓴 괴한들에게 납치됐으며, 납치 되기 전 “비록 죽음이 눈앞에 있지만, 슬프지 않다,”라는 글을 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연합 (UN)은 시리아 내전의 희생자 집계를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집계가 불가능할 만큼 상황이 격해지고 혼란스러워졌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나마 라잔 제이툰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길도 사라진 것이다.

메이 스카프 (May Scaff)는 2018년 7월 27일 피난처인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그녀는 죽기 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나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도 절대 잃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아사드의 시리아가 아니라, 위대한 (Great) 시리아다.” 라는 말을 남겼다.

 

본 기사는 스페인 유력 일간지인 엘 디리오 (El Diario)에 처음 실렸으며 [8], 이후 글로벌 보이스 (Global Voice)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담당 에디터인 조이 아유브 [9] (Joey Ayoub)가  원문을 보완하고 영어로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