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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말레이시아와의 해답 없는 보트 피플 (피난민) 정책

급증하는 밀입국자와 난민들, 이른바 “보트 피플”을 대하는 호주 정부의 강경노선이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2010년 12월 크리스마스섬 인근 해상에서 밀입국 선박이 암초에 걸려 침몰하면서 약 50여명의 난민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아남은 난민들을 말레이시아와 교환하는 일까지 법적인 문제에 가로막혔다.  앰버 제이미슨(Amber Jamieson)은 온라인 뉴스웹진 크리키(Crikey)에 혼란스러운 호주-말레이시아와 난민 협정이란 글을 기고하여 난민 문제를 둘러싼 최근 동향을 정리했다.

이번에 도착한 난민 42명(이 중 여섯은 보호자가 없는 어린이다)의 변호사 데이비드 만(David Manne)이 제기한 문제는 두 가지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피난민 정책에 있어서 인권 보호 문제, 그리고 호주에 의해 송환된 피난민들에게 말레이시아가 어떤 보호를 제공해 줄 수 있느냐란 질문이다.

…호주 정부는 어제 16명의 남성을 말레이시아로 강제 송환할 계획이었다. 이는 호주-말레이시아간 새로운 난민 교환 협정이 실행되는 첫 번째 경우로서, 이 협정에 따르면 앞으로 800여명의 “보트 피플”과 말레이시아로부터 정식 난민 지위를 얻은 약 4000여명을 교환할 예정이다.

인터넷 상에서 난민 교환 협정은 그다지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는 않는다. 급증하는 “보트 피플”의 유입에 넌더리가 난 측과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측, 두 진영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래버럴(Laberal)은 집권 노동당과 최대야당인 민주당과의 차이점을 찾으려 애쓰는 것도 지긋지긋 하다며 이런 자신의 심정을 만화로 그려냈다.

High Court ruling, the end of the Malaysian Solution?

출처: Laberal블로그

이안은 만화를 통해 이제는 과거의 유물이 된 하워드 정부 시절의 퍼시픽 솔루션(Pacific Solution)[망명자들의 난민신청이 진행되는 동안 난민들을 남태평양 제3국인 나루우 섬등으로 추방시키는 것]을 재차 들먹였다.

겉잡을 수 없는 국경 너머로의 환상 이란 글에서 Lavartus Prodeo 사이트의 김씨는 정부의 강경노선을 설명해줄 수 있는 여론조사의 충격적인 결과를 들여다 보았다.

(43퍼센트 호주인들이 난민 문제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란 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의 결과가 맞든, 아니면 43퍼센트가 아닌 33퍼센트의 국민 만이 이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든, 이 것은 여전히 놀라운 수치인 것은 변함이 없다. 야수를 옭아맨 고삐가 풀린 것이다.
좀 너그러이 말하자면, 작년 크리스마스에 즈음하여 발생한 크리스마스 섬 인근 난파사고의 재발을 두려워하는 심정에서 이같은 반응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회의론적 변호사(Skeptic Lawyer)의 리걸 이글(Legal Eagle)은 이번 협정이 영 마뜩잖다.

우선 나는 “말레이시아 솔루션”(:말레이시아와의 난민 교환을 통한 피난민 해결책)이 논의될 때부터 이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음을 밝힌다. 태평양 멀리 떨어진 섬이나 타국으로 난민들을 보내는 것이 애초 무슨 “해결책”이 될 수 있겠는가.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총체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일찍이 지적한 바, 문제의 본질은 난민의 편의성만 보장하는 비뚤어진 호주정부의 난민법에 기저한다. 일단 난민들이 호주 본토에 도착하면 해외에서 신청하는 것보다 더 쉽게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상황에 어떤 변화가 없더라도.

블로그 iDigress의  롭 벤슨(Rob Benson)은 기독교인은 말레이시아 솔루션을 인정할 수 없다란 글로써 이번 문제를 도덕적 기준에 입각해 바라본다.

연방정부의 소위 “말레이시아 솔루션”은 일견 난민 문제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단호한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권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는 분명히 혐오스러운 협정이고, 정의와 동정을 상징하는 기독교적 관점과도 상충한다.

이번 협정은 미래의 피난민과 난민 브로커들에게 경종을 일으킬 것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이번 협정은 옳지 않다.

피터의 호주 돋보기(Peter’s Aussie Views News)의 글은 주로 아이들, 특히 보호자가 전혀 없는 아이들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빈국의 한 어미니가 자식을 외국으로 보내는 작디 작은 배에 태울 때의 그 찢어지는 고통과 마음의 상처의 정도를 어찌 짐작할 수 있으랴. 하지만 엄마,아빠도 없이 혼자 온 그 어린 것을 강제로 말레이시아로 보내는 호주의 얼음같은 냉정함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앞으로 호주가 계속 국제적 의무를 저버릴 지, 여전히 그들을 “공정하게 내 보낸다”라고 주장하며 보호자 없는 아이들을 말레이지아로 보낼 지,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존 조지(John George)는 지긋지긋해(Had Enough)란 사이트에 이번 문제를 두고 말 그대로 지긋지긋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존은 “강경한” 정부나 “불법 난민”, 어느쪽의 편도 들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솔루션은 대실패로 보인다. 길라드 정부의 또 다른 삽질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망명신청자들을 말레이시아로 이송하는 대가로 4천여명의 이른바 “난민자격 획득자”들을 향해 항구를 개방해야할 판이다. 이번 협정은 애초에 호주에 이득이 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고 현재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정치인은 바보 순으로 뽑는건가?

결국 퍼시픽 솔루션과 다를 바 없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었으면서 길라드와 그 하수인들은 무엇을 그리 심하게 반대했던가?  하워드 정부와 별다를 것 없으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건지, 그것까지 나는 모르겠군.

저명한 변호사이자 인권변호인으로도 활동하는 줄리안 번사이드(Julian Burnside)는 호주라는 국가정체성을 곱씹어 볼 것을 촉구한다.

우리 호주는 2011년 한복판에 서 있다. 오늘의 우리는 좋을대로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행운을 누려왔는지, 또한 우리 내부의 맹목성과 이기심을 잊었다. 대신 기억속에 우리자신을 관대하며 이웃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나라,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새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는 국가적 신화를 구축했으며, 그곳엔 진실 따윈 잊혀진 지 오래며 허영심만이 공허함을 채우고 있다.

신화 속이 아닌 바로 그 모습이 진실로 우리 호주를 나타내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원래의 모습을 아예 잊은 것 같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계속해서 그것들을 상기 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호주라는 국가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이 남기는 발자취로 매일매일 재 정의 되기 때문이다. 호주는 지금보다 더 나은 국가라는 것을 정부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우리가 잊지 않도록.

법정판결이 어떤식으로 귀결되든 당파간의 의견일치를 보지 않는 다음에야 난민 신청자를 둘러싼 밀고당기는 논쟁은 하루아침에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썸네일 이미지 플릭커 이용자 Takver제공 (CC BY-NC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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